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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시스템 관리자 2026-01-07 69 원본
요약: 노무현(1946~2009)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참여정부"를 이끌었다. 권위주의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등을 추진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으며,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에서 생활하다 2009년 5월 서거했다.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개요

노무현(盧武鉉, 1946년 9월 1일 ~ 200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재임: 2003년 2월 25일 ~ 2008년 2월 24일)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참여정부"를 이끌었으며, 권위주의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얻은 정치인이기도 하다.

생애

출생과 성장 (1946~1966)

1946년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군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며, 독학으로 공부하여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시절 (1977~1988)

19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법조 경력을 시작했으나, 1978년 변호사로 전업했다. 1981년부터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부림사건 등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을 변론했다. 이 시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정계 입문과 국회의원 (1988~2002)

제13대 국회의원 (1988~1992)

1988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공천을 받아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초선의원이었음에도 제5공화국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준엄하게 질의하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되어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지역주의 타파 도전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하여 탈당한 후,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부산에서 여러 차례 출마했으나 낙선을 거듭했다. 이러한 도전정신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었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노사모와 인터넷 정치

2000년 한국 최초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자발적인 정치인 팬클럽이 결성되었다.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지지층의 성장은 2002년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대통령 당선 (2002)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후, 12월 19일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 로그온(Log-on) 했다"고 평했다.

참여정부 (2003~2008)

명칭의 의미

"참여정부"라는 명칭은 "민주주의를 국민의 참여가 일상화되는 참여민주주의의 단계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에서 정해졌다. 진정한 국민주권, 시민주권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주요 정책과 업적

권위주의 청산

  • 청와대 권위주의 문화 개혁
  • 언론 자유 확대
  • 과거사 진상 규명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설립)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추진
  • 공공기관 지방 이전
  • 지방분권특별법 제정

복지 정책

  • 기초노령연금제도 도입
  •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 저출산·고령사회 대책 수립

남북관계

  • 2007년 10월 2~4일 평양 방문 (남북정상회담)
  • 10·4 남북정상선언 발표
  • 개성공단 활성화

한미관계

  • 한미 FTA 협상 추진
  • 이라크 파병 결정
  •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

탄핵 소추와 기각 (2004)

2004년 3월 12일 야당이 주도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어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다. 그러나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기각하여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이 기간 동안 국민적 지지가 높아졌다.

퇴임 후

봉하마을 귀향

2008년 2월 퇴임 후 고향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퇴임 후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되었다. 봉하마을에서 생태농업과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 민주주의와 진보를 주제로 한 연구·집필 활동에 전념했다.

박연차 게이트와 검찰 수사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박연차 게이트 관련 수사가 확대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노무현 본인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서거

2009년 5월 23일 오전 6시 40분경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서거했다. 향년 62세. 오전 5시 21분에 컴퓨터에 유서를 남겼으며,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국민장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국민장 기간 동안 봉하마을과 전국 분향소에 약 500만 명(추산에 따라 최대 1,000만 명)의 조문객이 몰렸다. 5월 29일 서울시청 앞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유언에 따라 화장 후 봉하마을에 안장되었다.

사후

봉하마을 묘역

2009년 8월 5일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이 국가보존묘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묘역에는 1만8천여 시민이 추모글을 새긴 1만5천 개의 박석이 깔려 있다.

노무현재단

서거 후 노무현재단이 설립되어 민주주의와 인권, 시민참여 증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사료관이 설립되었다.

추모 문화

매년 5월 23일 봉하마을과 전국 각지에서 추모 행사가 열린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은 그의 정치적 도전정신과 청렴성을 상징하는 말로 추모되고 있다.

평가

노무현은 한국 정치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지역주의 타파, 권위주의 청산, 참여민주주의 확대 등을 추구했으며,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정치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거 후에도 그의 정치적 유산과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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