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애국가(愛國歌)는 대한민국의 국가(國歌)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이다. 1935년 작곡가 안익태가 곡을 붙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식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에 의해 정식으로 국가로 제정된 것은 아니나, 관습적으로 국가로 불리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역사
초기 애국가 (1896~1902)
애국가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6년 독립신문에 애국하는 노래라는 뜻의 "애국가"라는 제목의 노래가 게재되기 시작했다. 다만 이 시기의 애국가는 현재와는 다른 가사와 곡조를 가지고 있었다.
올드 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 (1902~1948)
1902년경부터 현재 애국가 가사에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선율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이 곡조는 오랫동안 애국가의 멜로디로 사용되었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이 곡조로 애국가가 불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채택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안창호를 중심으로 올드 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임시정부는 이후 1940년 안익태가 작곡한 새 곡조를 공식 채택하게 된다.
안익태의 작곡 (1935)
작곡가 안익태는 애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불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한국인으로서 직접 작곡하기로 결심했다. 3년간의 고심 끝에 1935년 11월 사(G)장조로 된 새로운 곡을 완성했다. 같은 해 12월 28일 시카고 한인교회에서 안익태가 직접 지휘하여 초연했다.
임시정부의 공식 채택 (1940)
1940년 9월 미주 대한인국민회에서 안익태가 작곡한 신곡조의 애국가를 부를 것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요청했다. 대한민국 22년(1940년) 12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그 사용을 허가하기로 의결하여 공식 채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사용 (1948~)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노래말과 함께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의 애국가가 정부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각급 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했다.
가사
| 절 | 가사 |
|---|---|
| 1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 후렴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 2절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
| 3절 |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
| 4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
가사 작사자 논란
애국가 가사의 작사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윤치호(尹致昊), 안창호(安昌浩), 민영환(閔泳煥)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윤치호 작사설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저작권
애국가의 저작권은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2005년 3월 16일 안익태의 유족이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함으로써 저작권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현재 애국가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연주 규정
대한민국에서 애국가는 공식 행사에서 연주되며, 국기에 대한 경례 시 기립하여 애국가를 부르거나 경청한다. 스포츠 경기 등에서도 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다. 방송에서는 하루의 시작과 끝에 애국가를 방송하기도 한다.
음악적 특징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는 사(G)장조, 4/4박자의 장엄한 곡이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니며, 한국적인 선율과 서양 클래식 음악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후렴구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특히 감동적인 고조를 이룬다.
한국환상곡과의 관계
안익태는 1938년 애국가를 발전시켜 <한국환상곡>(Korea Fantasia)을 작곡했다. 공식 명칭은 "교향환상곡 1번 코리아"(Symphony Fantasie No.1 Korea)로, 마지막 4악장의 주제가 바로 애국가이다. 이 곡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초연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