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강남역 4번 출구. 성형외과 간판들이 빼곡히 늘어선 거리.
나, 한도윤(28세)은 오늘 이 거리를 처음이 아닌 척 걷고 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쓰고. 마치 범죄자처럼.
남자가 성형이라니. 아버지가 알면 뭐라고 하실까. "남자가 그게 뭐냐"라고 하시겠지.
하지만 28년을 "못생긴 남자"로 살아온 내 인생은 한계에 다다랐다.
오늘, 상담 예약이 있다.
제1화. 결심
6개월 전의 일이다.
회사 회식 자리. 여자 동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도윤? 걔 일은 잘하는데 얼굴이 좀..."
"솔직히 못생겼잖아. 눈도 작고 코도 낮고."
"성격은 좋은데 남자로는 안 보이더라."
웃으며 넘기려 했다. 28년간 그래왔으니까.
하지만 그날 밤,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작은 눈, 낮은 코, 무턱.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
운동을 해봤다. 몸은 좋아졌다. 하지만 얼굴은 그대로였다.
패션을 바꿔봤다. 옷은 좋아졌다. 하지만 얼굴은 그대로였다.
"성형하면... 달라질까?"
처음으로 그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뒤졌다. 남자 성형 후기. 생각보다 많았다.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여자친구도 생겼습니다."
솔깃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남자가 성형? 주변에서 뭐라고 할까? 부모님은? 친구들은?
고민만 3개월. 결국 결심했다. 몰래 하자. 아무도 모르게.
제2화. 수술
강남의 K성형외과. 남자 전문이라는 곳이었다.
상담실에서 원장님이 말했다.
"도윤 씨, 눈, 코, 턱 라인. 세 군데 하시면 자연스럽게 달라질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요?"
"네. 성형티 안 나게. 원래 잘생겼던 사람처럼."
"...해주세요."
비용은 2000만원. 3년간 모은 돈 전부였다.
수술 당일. 수술대에 눕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미쳤나. 남자가 성형이라니.'
하지만 마취가 들어오고, 의식이 흐려졌다.
눈을 떴을 때, 얼굴 전체가 붕대로 감겨 있었다.
회복 기간 2주. 회사에는 교통사고라고 거짓말했다.
"도윤아, 괜찮아? 얼굴 다쳤다며?"
"응, 경미하게. 금방 나을 거야."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붕대를 풀던 날. 거울을 보고 얼어붙었다.
"이게... 나야?"
쌍꺼풀이 생긴 눈. 높아진 콧대. 갸름해진 턱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원래 내 안에 있던 "잘생긴 나"가 나온 것 같았다.
제3화. 새로운 세상
복귀 첫날. 출근하는 발걸음이 떨렸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한도윤...씨?"
"어, 뭐야. 완전 달라졌어."
"교통사고 났다며? 어디 다쳤어?"
"아, 그냥 찰과상이었어. 이제 다 나았어."
교통사고 핑계가 통했다. 다들 "살 빠지고 좀 달라진 것 같다"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반응은 확실히 달랐다.
예전엔 눈도 안 마주치던 여자 동기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도윤 씨, 점심 같이 먹을래요?"
"도윤 씨, 커피 한 잔 할래요?"
씁쓸했다. 달라진 건 얼굴뿐인데. 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한 달 후, 회사 근처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서지민. 옆 팀 신입사원. 단발머리에 웃을 때 보조개가 생기는 여자.
"혹시 K기업 분이세요?"
"네, 맞아요."
"저도요! 저 마케팅팀 서지민이에요. 자주 봤는데 말 걸 타이밍이 없었어요."
"아, 저는 개발팀 한도윤입니다."
지민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난 의심이 들었다.
'이것도 얼굴 때문일까?'
제4화. 지민
지민과 자주 마주쳤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도윤 씨, 또 만났네요. 인연인가 봐요."
"하하, 그러네요."
지민은 밝고 솔직한 성격이었다. 말도 잘 통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이 관심이 진짜일까?
어느 날, 지민이 물었다.
"도윤 씨는 왜 연애 안 해요?"
"...그냥요. 기회가 없어서."
"거짓말. 이렇게 잘생긴데."
심장이 찔렸다. '잘생긴'. 3개월 전만 해도 절대 들을 수 없던 말.
"저... 예전엔 안 그랬어요."
"네?"
"아뇨, 아무것도."
점점 지민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고백할 수 없었다.
'내 진짜 얼굴을 알면... 실망하겠지.'
성형한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제5화. 친구의 발견
대학 동기 모임이 있었다. 4년 만의 만남.
"야, 한도윤?! 너 왜 이래?"
"뭐가?"
"얼굴! 완전 달라졌어!"
친구들이 웅성거렸다. 숨길 수 없었다.
"...성형했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폭소.
"야, 남자가 성형? 대박. 너 진짜 용기 있다."
"근데 잘했는데? 완전 자연스러워."
예상과 달랐다. 비난 대신 인정. 조롱 대신 응원.
"솔직히 니가 외모 때문에 힘들어한 거 알았어. 잘한 거 같아."
친구 재혁이가 말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한 명이 말했다.
"근데 이거 여자친구한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냐? 나중에 알면 배신감 느낄 수도."
"...여자친구 없어."
"좋아하는 사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지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6화. 밀려오는 감정
지민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점심도 같이, 퇴근 후 산책도 같이.
"도윤 씨, 주말에 뭐 해요?"
"특별히... 없어요."
"그럼 저랑 전시회 갈래요? 예술의전당에서 모네전 한대요."
데이트 신청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좋아요."
토요일. 예술의전당. 모네의 수련 앞에서 지민이 말했다.
"도윤 씨."
"네?"
"저, 도윤 씨 좋아해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저요?"
"네. 처음 봤을 때부터요."
처음 봤을 때. 그건 내가 성형한 후였다.
'만약 성형 전에 만났다면... 이랬을까?'
대답하지 못했다. 지민의 눈에 실망이 스쳤다.
"...싫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요?"
"나... 할 말이 있어요."
제7화. 고백
전시회를 나와 한강공원을 걸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무슨 말인데요?"
지민이 물었다. 심호흡을 했다.
"지민 씨, 나... 성형했어요."
"...네?"
"지금 이 얼굴, 원래 내 얼굴이 아니에요. 6개월 전에 수술했어요."
지민이 말을 잃었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남자가 성형이라니 이상하죠? 그래서 말 못 했어요."
"..."
"지민 씨가 저 좋아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의심했어요. 이 얼굴이 아니었어도 좋아했을까?"
"도윤 씨..."
"미안해요. 알 권리가 있잖아요."
침묵이 흘렀다. 길게 느껴졌다.
지민이 입을 열었다.
"예전 얼굴... 보여줄 수 있어요?"
"...네?"
"보고 싶어요. 원래 도윤 씨 얼굴."
핸드폰을 꺼냈다. 성형 전 사진. 작은 눈, 낮은 코, 무턱의 내 모습.
지민이 한참 사진을 보더니 말했다.
"...눈이 똑같네요."
"네?"
"눈빛이요. 지금 도윤 씨랑 똑같아요. 따뜻하고 선한 눈."
"..."
"저, 처음에 도윤 씨 얼굴 때문에 관심 가진 거 맞아요. 근데요, 좋아하게 된 건 얼굴 때문이 아니에요."
"무슨..."
"도윤 씨 웃는 모습, 말투, 배려심. 그런 게 좋았어요. 얼굴은... 부록 같은 거죠."
눈물이 났다. 28년 인생에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제8화. 받아들임
그날 이후, 우리는 공식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지민은 내 과거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응원해줬다.
"도윤 씨, 대단한 거야. 28년간 힘들었을 텐데 스스로 변화를 선택한 거잖아."
"...대단하지 않아. 도망친 거지."
"도망이 아니야. 용기야.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 거야."
부모님께도 결국 말씀드렸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남자가 얼굴을 고쳐? 그게 말이 되냐!"
"아버지, 죄송해요. 하지만 후회 안 해요."
"..."
어머니가 중재하셨다.
"여보, 도윤이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냥 이해해줘요."
아버지는 한참 후에야 말씀하셨다.
"...니가 행복하면 됐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제9화. 진짜 나
1년이 지났다. 지민과 사귄 지 1년. 성형한 지 1년 6개월.
이제 거울 속 얼굴이 완전히 "내 얼굴"이 됐다. 어색함은 사라졌다.
하지만 가끔 생각한다. 성형이 없었어도 행복할 수 있었을까?
어느 날, 회사 신입사원이 찾아왔다. 김태현, 24세. 나처럼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친구였다.
"선배님, 저... 상담드릴 게 있어요."
"응, 뭔데?"
"선배님 혹시... 성형하셨어요?"
놀랐다. 처음으로 직접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왜 물어봐?"
"저도... 고민 중이에요. 근데 남자가 성형하면 이상하잖아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응, 나 성형했어."
"...진짜요?"
"응. 2년 전에. 눈, 코, 턱."
태현의 눈이 커졌다.
"후회해요?"
"아니. 전혀."
"...저도 해도 될까요?"
"그건 니가 결정할 일이야. 근데 한 가지만 말해줄게."
"뭔데요?"
"성형해도 너는 너야. 달라지는 건 얼굴뿐이야. 자신감, 성격, 능력... 그건 스스로 만들어야 해."
제10화. 프러포즈
지민과 사귄 지 2년.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게 됐다.
지민은 내 과거도, 콤플렉스도, 불안함도 모두 받아들였다.
나도 지민의 단점들을 알게 됐다. 길치에, 요리 못하고, 가끔 예민하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남산타워에서 야경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
"지민아."
"어, 왜?"
"나랑 결혼해줄래?"
반지를 꺼냈다. 지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당연하지, 바보야."
끌어안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도윤아."
"응?"
"나, 처음에 니 얼굴 보고 관심 가진 거 솔직히 인정해."
"...알아."
"근데 지금은 달라. 니가 성형 전으로 돌아가도 난 상관없어. 니 자체를 사랑하니까."
"...고마워."
"아니, 내가 고마워. 솔직하게 말해줘서. 숨기지 않아서."
에필로그. 나다운 것
결혼식 날, 거울 앞에서 턱시도를 입었다.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얼굴은 다르지만, 눈빛은 같다.
지민 말대로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도윤아."
"네, 아버지."
"...잘생겨졌네."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아버지가 웃으셨다.
"예전 얼굴도 괜찮았어. 근데 지금이 더 니답다. 자신감 있어 보여."
"감사합니다, 아버지."
버진로드에서 지민을 만났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지민이 웃었다.
"잘생겼다."
"너도 예뻐."
성형이 내 인생을 바꿨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진짜 내 인생을 바꾼 건 용기였다. 변화를 선택한 용기. 진실을 말한 용기. 나를 받아들인 용기.
성형은 도구였을 뿐이다. 중요한 건 그 도구로 무엇을 했느냐.
나는 자신감을 얻었고, 사랑을 찾았고, 나다운 삶을 살게 됐다.
강남역 4번 출구. 그곳에서 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후회는 없다.
- 완 -